차가운 그녀와의 짧은 카톡. 결국 잠시잠깐 그녀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한적한 학교 앞 놀이터. 첫 이별을 고했던 장소.
불안하다. 왜 그녀가 여기를 장소로 택했을까. 왜 하필 헤어졌던 이 장소로.

그녀는 사진속과는 다르게 캐주얼한 분위기로 나왔다.
프린팅이 귀엽게 되어있는 하얀 티셔츠와 살짝 찢어진 짧은 청바지.
살색 스타킹에 조금은 더러운 나이키 운동화. 사진과는 다른 연한 화장.

"카톡 봤어. 잘 지내는 것 같더라."
"응. 새로운 사람도 생기고 너무 행복하게 지내. 오빠는 어때?"

새로운 남자에 대해 소개하는 그 순간 그녀는 너무 태연하고 평온해보였다.
아무런 대꾸도 못한 채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운동화만 하염없이 바라보는 내게
그녀는 더욱이 비수를 꽃는 차가운 한마디를 건낸다.

"왜 보자고 했어? 빨리 말해줘. 나 주현오빠 만나러 가야해"

답답하고 슬프고 절망스런 그녀의 한 마디. 나도 모르게 그녀 앞에 무릎꿇는다.
수치심? 그런건 연주를 붙잡는데 아무런 도움 안되는 것들이다.
조금은 놀란 연주의 표정을 느끼며 조심히 천천히 그녀를 붙잡았다.

"......... 미안 ....... (중략) .. 다시 내게 기회를 주면 안되? "

남자로써 자존심을 버리고 내 솔직한 감정을 표현 하고 그녀를 처다본다.
그녀의 손에 쥐어진 핸드폰.
나의 이런 진솔한 고백도 그녀에게는 별 중요치 않나보다.

"남자친구에게 늦는다고 말하느라고. 정리하자면 다시 기회를 달란 말이지?"

올려다 본 그녀는 너무나 예뻤다. 사랑스럽고 아름다웠고 경외스럽기까지 했다.
간절한 마음을 가득 담아 고개를 끄덕인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싫어란 짧은 한마디 뿐.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 이대로 그녀를 보내면 너무 고통스런 나날을 보낼것 같다. 정말 마지막이다.
이런 내 마음은 나조차 생각지 못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

"너에게 새 사람이 생긴건 짐작하고 있었어. 그래도 난 너가 좋아. 옆에만 있게 해줘"
"모든지 할께. 심심풀이 장난감이라 생각하고 아주아주 가끔만 만나줘도 좋아. 제발 부탁이야."
"날 이용해도 좋아. 날 가지고 놀아도 좋아. 정말이야"

긴 독백을 끝내고 머리를 바닥에 살며시 대며 그녀의 통보를 기다린다.

"내가 그렇게 좋아? 헤헤. 근데 어쩌지 난 오빠가 이제 별로 안 좋은데."

청천벽력과 같은 소리에 고개를 들며 그녀를 바라보는 나. 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살며시 웃고 있는 그녀.
내가 왜 이렇게까지 해야 될까란 기분은 들지 않았다. 그녀가 너무 예뻐보였다.

그리고 이어진 그녀의 한 마디.

"그래도 오빠가 이렇게 간절히 비니까 내 옆에는 있게 해줄께. 대신 각오해"
"처절히 무너트리고 짖밟아줄께. 그래야 오빠가 내 곁을 떠나 행복할테니까"
"하루라도 오빠가 새 출발할수 있도록 냉정히. 내 예전 남자친구란 생각안고 막 대할꺼야. 괜찮지?"

"응응"

안도감에 황급히 대답을 하며 조용히 그녀가 신고 있는 운동화에 입을 맞춘다. 감사의 표시로.

"개 같아"

짧은 대답을 마치고 그녀는 자리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그 남자를 만나러 떠난다.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처량한 내 모습이 이제야 느껴졌다. 비굴했지만 그녀를 잡으려면 어쩔수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모든것을 다 해 그녀를 다시 되찾아 오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다.
그러나 내 다짐은 정말 아무런 쓸모없는 다짐이란걸 그 당시는 몰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