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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24 16:08 476회 0건
[35부]



유리는 정말로 이상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쌔근쌔근 잠이 든 용우에게서 시선을 돌려 다시 한 번 커튼을 살짝 젖혀 창문 밖을 내려다보는 유리. 골목길 모퉁이에는 가희 아줌마가 몸을 숨긴 채 빼꼼히 집의 대문을 감시하고 있었다. 유리의 눈동자가 살며시 가늘어졌다.

"여보...너무..늦게 오지 마세요......"

자신과 같이 레스토랑을 나서며 현석 아저씨를 바라보던 가희 아줌마의 애틋한 눈빛이 생생히 기억났다. 유리는 그 눈빛이 무엇인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아빠를 바라보는 자신의 눈빛이었으니까. 게다가 아줌마는 자신과 용우를 데리고 아줌마의 친정으로 왔다. 유리는 배에서의 기억을 떠올렸다. 자신은 도망치게 하고 불을 뿜는 총구 앞으로 뛰어들던 아빠. 자신보곤 화장실로 숨으라고 하면서 자기는 테러범쪽으로 가려고 했던 아빠. 자신은 창고에 안전하게 숨어있게 하고 혼자서 위험한 곳으로 가버렸던 아빠. ...아빠는 항상 위험한 행동을 하려 할 때면 반드시 자신은 안전한 곳에 숨겨놓으려고 한다. 유리는 지금의 상황이 그때와 너무나도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더군다나 가희 아줌마는 어디 외출할 데가 있다더니 저렇게 숨어서 자신을 감시하고 있다. 유리는 분명히 오늘 아빠와 현석 아저씨가 무슨 일을 벌이려 한다고 생각했다.
유리는 입술을 꼬옥 씹어물며 핸드폰을 꺼내었다.

두근, 두근...

가슴이 세차게 뛰었다.

"제발 받길......"

유리는 레스토랑으로 전화했다. 잠시간 신호음이 들리고,

"아빠..."

계속해서 신호음만 들려왔다. 한참동안 핸드폰을 귓가에 가져다대고 있다 결국 서서히 팔을 늘어뜨리는 유리. 그녀는 두 눈을 꼭 감으며 잠시 쉼호흡을 했다.

"그렇지 않을 거야. 설마...난 겨우 오늘..아빠에 대해서 알게 되었는데, 그런데 내가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벌써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을 거야. 설마 내가 그렇게나 운이 없는 애는 아닐 거야. 시험 칠 때도 모르는 걸 찍으면 항상 70프로는 맞았잖아?"

유리는 잠시 그렇게 스스로를 진정시키곤 핸드폰의 1번을 누르고, 통화버튼을 눌렀다.





<삐비비비빅, 삐비비비빅...>

부앙~드륵, 빠아아아아앙......

속도계는 이미 시속 220을 넘고 있었다.

"형님. 전화왔습니다."

태현이 운전하고 있는 페라리 안에는 현석도 같이 타고 있었다.

"대신 좀 받아라."

옛날에야 운전하면서 오만 짓을 다 했지만, 태현은 지난 수년간 유리를 뒤에 태우고 다닐 때의 습관이 몸에 베어버려 이제는 운전할 때는 운전에만 집중을 했다.

"예. 실례하겠습니다."

현석은 조심스런 손길로 태현의 바지 호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었다. 발신자를 확인하곤 염려스런 표정을 짓는 현석.

"형님. 유리입니다."
"......"

태현은 곤란한 얼굴로 눈썹을 긁적이곤 서서히 속도를 늦추며 현석에게 손을 내밀었다. 현석은 휴대폰을 폴더를 열어 태현의 손 위에 올려주었고, 태현은 "드륵" 기어를 1단 내리고 전화를 받았다.

"응~유리니?"
<...아. 아빠......>

태현은 일부러 상냥한 목소리를 내었다.

"응~그래. 왜 전화했니?"
<아빠...나 너무 아파...어디야...? 가게에 전화하니까 안 받던데......>

가녀린 유리의 음성에 태현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다.

"어, 어디니? 지금 누구랑 같이 있어?"
<지금...가희 아줌마...할머니 집이야......>

태현의 유리의 말에 그나마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조금 전에는 혹시나 유리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일까 너무나 놀랬었다. 태현은 부드러운 음성으로 유리에게 말했다.

"유리야. 아빠가 지금 조금 바쁜 일이 있어서 그래. 그러니까 가희 아줌마한테 약 좀 사달라고 하고 쉬고 있어. 알았지?"
<......>

유리는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태현은 아프다는 유리에게 이렇게 밖에 말해줄 수 없는 자신이 너무 안타까웠다.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태현에게 유리의 냉랭하게 돌변한 음성이 들려온다.

<가희 아줌마 외출했잖아. 아빠도 알고 있지 않아?>
"......!!"

"실수했다...!"

태현은 속이 뜨끔하는 것을 느꼈지만 애써 태연한 목소리를 내었다.

"아..아참, 그..그랬지? 근데 유리야 어쩌지? 아빠 조금 멀리 있는데, 할머니한테 말해볼래? 많이 아파?"
<......죽을 만큼 아파.>

유리의 화난 음성에 태현은 어쩔 줄 몰라했다. 그런 그에게, 잠시 아무 말이 없던 유리가 목소리를 내뱉었다.

<내가 말했었지? 아빠가 죽으면 나도 따라서 죽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혼자 두지마. ...삑, 뚜...뚜...뚜...>

유리는 그 말을 끝으로 전화를 끊어버렸고, 태현은 혼란스런 기분으로 휴대폰 폴더를 서서히 닫았다. 마치 유리의 말이 자신이 지금 무엇을 하려고 하는지 알고 있다고 말하는 것만 같아 머릿속이 복잡했다.

"......죽을 만큼 아파."
"내가 말했었지? 아빠가 죽으면 나도 따라서 죽을 거라고. 그러니까, 나..혼자 두지마."

태현의 얼굴이 괴로움으로 얼룩졌다. 유리는 죽을 만큼 아프다는데, 자신은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다. 태현은 마음 같아서는 핸들을 꺾어버리고 싶었다. 그래서, 한시라도 빨리 유리에게로 가서 아픈 곳을 어루만져주고, 함께 있어주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태현의 눈에 도로 표지판이 비춰진다. <부산 287km>

부아앙~드륵, 빠아아아앙......

태현은 이를 꽉 사려물며 악셀을 힘껏 밟았다.

"금세 갈게...아빠 금세 갈 테니까...그러니까 조금만 기다려 유리야......"

남쪽으로 내려갈수록, 하늘이 점점 어두워지며 먹구름이 태양빛을 가린다.





"형님. 애들 전부 대기시켜 놓았습니다."

담배를 입에 문 채 서류를 훑어보고 있던 형필은 부하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전부 몇 명이냐."
"고윤수의 갈매기파까지 합쳐서 전부 287명 입니다."
"음...그래. 수고했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끄는 형필. 그런 형필에게 젊은 남자가 조심스런 음성으로 물었다.

"저..형님. 김장군께 제공받은 물건으로 애들을 무장시킬까요?"

형필은 피식 웃었다.

"내가 김장군과 친분을 트는 것은 고작 조폭 몇 마리 죽이자고 하는 게 아니다. 게다가, 굳이 총을 개입시켜서 경찰을 자극시킬 필요는 없다. 아니. 정태현을 자극시킬 필요가 없다. 녀석의 신조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 녀석이 총을 잡게 만들어서는 안 돼. 총을 든 그는 말 그대로 사신이니까."
"......예. 알겠습니다."

젊은 남자는 실례했다는 얼굴로 고개를 숙였다. 형필은 그런 젊은 남자를 힐끗 쳐다보곤 말을 이었다.

"내가 지시한대로 실수 없이 잘 해야한다. 정태현만 노리되, 무슨 일이 있어도 유길수와 지우철을 내주는 일은 결코 있어선 안 된다. 최소한 그 두 녀석은 그분께 선물로 드려야하니까. ...그리고. 잘 들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정태현을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명심하겠습니다. 아, 그리고. 이의원님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조만간에 한 번 만나자고 하십니다."

형필의 입가에 조소가 떠올랐다.

"선거 자금이 많이 딸리는 모양이로군. 알겠다. 최대한 빠른 날짜를 잡아놓아라."
"예. 알겠습니다."
"나가봐."

형필은 젊은 남자가 나가고 나자 한숨을 천천히 내쉬며 두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

"이제는 정말로 시작되었군......"

형필은 그렇게 중얼거렸다.

"...절대로 지지 않는 싸움이......"

얼굴에서 손이 서서히 치워지자, 숨겨져 있던 비릿한 웃음이 드러났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부산항 제3부두. 마치 미로와 같이 늘어서 있는 화물 컨테이너는 부두를 외부와 완벽히 차단시키고 있었다. 그리고 그곳 가장 깊숙한 곳에, 백여 명의 남자들이 들어섰다.

"길수..와 우철이...?"

일정치 않게 세워져 있는 가로등은 부두의 어두움을 밝히는데 그리 도움이 되지 않았다. 현석의 목소리를 들으며 태현도 저 멀리 마치 죽은 듯이 꼼짝도 하지 않으며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의자에 묶여있는 길수와 우철을 바라보았다. 태현의 주먹이 꽈악 쥐인다.

"김형필! 나와라!!"

태현이 버럭 고함질렀다.

...나와라...와라...와라......

태현의 고함소리가 메아리를 만들며 부두의 정적을 일거에 깨트렸다. 메아리가 사라지자 다시 침묵에 잠기는 부두. 그리고, 하나둘 제각각 손에 각목이나 쇠파이프를 든 남자들이 태현들의 주위에 나타나기 시작했다.

"매복하고 있었군요."

컨테이너 벽 너머에서 끝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남자들을 보며 현석이 이를 사려물며 말했다. 태현은 아무런 대답도 해주지 않았다. 그리고 순식간에 백여 명의 태현파 조직원들은 3배에 가까운 남자들에게 둘러싸이게 되었다. 차가운 눈빛으로 주위를 천천히 둘러보는 태현. 그러다 그의 눈에 자신쪽으로 천천히 걸어나오는 한 젊은 남자가 들어왔다. 태현의 시선은 젊은 남자에게로 고정되었다.

"저 녀석이다."

태현은 단번에 저 젊은 남자가 이들을 통솔하고 있음을 눈치 채었다. 나이는 대략 20대 중후반. 180정도의 키에 잘 벼려진 검을 한자루 세워놓으면 저리 보일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기운이 느껴지는 남자였다.

"도강재라고 합니다."

젊은 남자가 태현으로부터 대략 15m정도 떨어진 곳까지 다가와 먼저 입술을 열었다. 태현은 아무 말 없이 도강재라 자기를 소개한 젊은 남자를 차갑게 응시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제가 모시는 분께서 한때 신세를 지셨던 분에 대한 저의 처음이자 마지막 예우입니다."

젊은 남자가 허리를 깊숙히 숙였다 편다. 서서히 들리는 그의 눈빛은 삽시간에 바뀌어 사납게 번뜩이고 있었다. 태현은 눈동자로 진득한 살기를 피워내는 강재를 보며 그가 간단한 상대가 아님을 직감했다.

"김형필은 오지 않았나?"
"그분은 그리 한가하신 분이 아니다."

하긴 그 약삭빠른 녀석이 굳이 이런 곳까지 올 리가 없다. 태현은 씁쓸한 얼굴로 피식 웃었고, 강재는 정장 마이의 옷깃을 한 번 턱, 잡아내려 선을 정리하곤 말했다.

"긴말하지 않겠다. 바로 시작하지."

강재는 말이 끝나기 무섭게 태현에게로 짓쳐 달려왔다. 그리고 그것이 신호가 되어 태현들을 포위하고 있던 3백여 명의 남자들이 고함을 내지르며 달려오기 시작했다.

으와아아아아...!!!

순식간에 뒤엉키는 4백여 명의 남자들. 한편 태현은 순식간에 거리를 좁혀오는 강재를 응시하며 자세를 잡곤 어깨를 가볍게 한 번 털어 긴장을 떨쳐내었다.

쉬싯!!

칼이 휘둘러지는 파공성이 찰나의 순간에 터져나왔다.

"?!"

태현은 눈빛으로 쫓기도 어려울 만큼 경악스런 스피드의 강재의 주먹을 허리를 필사적으로 뒤틀어 가까스로 피해내었다.

"......"

자신의 주먹을 피해낸 태현을 수초간 물끄러미 쳐다보는 강재. 태현은 강재가 자신에게 어떤 말을 할 거라 생각했다. 예를 들어 "제법이군." 내지는 "듣던 대로 꽤 하는 걸."과 같은 말. 이건 주먹에 자신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내뱉을 법한 그런 말이었다. 그러나 강재는 자신에게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는다. 심지어 저 남자에게서는 실력 있는 주먹이라면 누구든 눈빛에서 뿜어내는 자신감 같은 것 마저도 느껴지지 않았다. 단지, 오로지 자신을 쓰러뜨리겠다는 의지. 그것 하나만 강재에게서 느껴질 뿐이었다.

"차원이 다른 주먹이다."

태현은 직감했다. 자신이 상대해본 주먹들 중에서도 손에 꼽힌다고 생각했던 그 현이란 이름의 중국인 남자보다도 한수, 어쩌면 두수 내지 세수 높은 상대다. 태현은 서서히 집중력을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서서히 초점이 강재의 눈으로 집중되는 태현의 눈동자. 그러나 태현이 모든 집중력을 다 끌어올리기도 전에, 강재의 주먹이 먼저 날아왔다.

O!!

얼굴을 향해 날아오는 주먹. 태현은 고개를 옆으로 꺾어 그 주먹을 피하며 강재의 겨드랑이 안으로 파고들었다.

퍼벅!!

두 개의 강타음이 거진 동시에 터져나왔다. 강재는 내뻗었던 주먹을 회수하지 않고 그대로 팔꿈치로 태현의 등을 내려찍었고, 태현은 강재의 복부에 주먹을 꼿아넣었다.

"큭!"

신음을 터트린 건 태현이었다. 강재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을 뿐이다. 태현은 강재의 복부에 꼿아넣었던 주먹이 쓰려오는 것을 느꼈다.

"저 녀석 배에다가 철판을 대놓은 건가?"

물론 그렇지 않았다. 태현도 단지 너무나 딴딴한 강재의 복부에 그렇게 흘러가듯 한 번 생각했을 뿐이었다.

"g...!"

강재가 짧은 파열음을 내뱉으며 태현에게 잽을 날렸다. 태현은 급히 뒤로 물러서며 강재의 잽을 피해내며 그의 움직임을 관찰했다. 얼굴을 가드하는 자세, 어깨의 긴장 정도, 불필요한 움직임이 전혀 없는 스탭.

"복싱을 배운 녀석이군."

그것도 상당한 수준이다. 그러나 태현이 그런 생각을 했을 때, 마치 주먹을 날리려는 듯 어깨를 움찔 떨어서 태현이 허리를 옆으로 꺾게 만든 강재는 그대로 태현의 무릎 뒷편을 걷어차서 태현이 균형을 잃게 만들었다. 잠시의 틈도 주지 않고 날아오는 강재의 펀치.

퍼억...!!

클린 히트였다. 태현의 얼굴은 피를 뿜어내며 옆으로 꺾였다. 곧바로 몸을 뒤틀어 훤히 드러난 태현의 가슴팍을 구둣발로 돌려차는 강재.

푹...!!

마치 칼이 박히는 듯한 소리가 났다.

"커헉...! 큭...!"

태현은 가까스로 쓰러지지는 않았지만 뒤로 몇 발자국이나 물러났다. 태현은 가슴을 몇 번 매만지곤 혀로 이를 훑어 핏물을 "투!" 뱉어내었다. 강재는 전설의 주먹을 상대로 이렇게나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면서도 조금도 표정의 변화를 만들지 않았다. 태현은 눈썹을 긁적인다.

"귀찮은 스타일이야."

자신과는 스타일이 달랐다. 태현은 싸움 그 자체를 즐겼다. 서로의 강함을 겨루는 것에서 즐거움을 느꼈던 것이다. 그러나 저 사내는 다르다. 목적을 위해서 싸운다. 따라서 저런 스타일의 상대는 도발도 할 수 없고 다른 그 어떤 유형의 파이터보다 빈틈을 찾아내기 어렵다.

"하...!"

태현은 피식 웃었다.

"재밌군."

태현의 이 말이 마치 신호라도 된 듯 강재가 곧바로 주먹을 날려왔다. 태현의 입가에는 웃음이 어려있었다.

파악...!

허리를 급격하게 숙이는 태현의 머리 바로 위로 바람에 떠밀려 떠오르는 태현의 머리칼을 튕겨내며 강재의 주먹이 스쳐지나갔다. 태현은 그대로 강재의 품에 뛰어들곤 곧바로 이어지는 연결동작으로 허리를 힘껏 튕겨 팔꿈치로 강재의 턱을 올려쳐버렸다. 강재의 머리가 뒤로 세차게 꺾여나가고, 태현은 팔꿈치를 올려친 회전력을 죽이지 않고 그대로 이용해 한바퀴를 돌아버리며 팍, 원스탭을 밟음과 동시에 강재의 허리에 회전력과 체중을 동반한 주먹을 쑤셔넣었다.

푸욱!!

"허억...!!"

강재의 입에서 바람이 빠지는 소리가 터져나온다. 태현은 조금의 틈도 주지 않고 강재의 머리를 양손으로 움켜쥐곤 급격히 아래로 당겨내렸다. 그러면서 무릎을 올려찬다. 태현은 강재의 얼굴을 무릎에 찍으려는 심산이었지만, 그러나 강재는 두 팔로 안면을 가드해서 태현의 공격을 막아내었다. 공격을 실패한 태현에게 생긴 틈을 강재는 놓치지 않았다.

파라락, 퍼억!

강재는 공격을 막은 그 자세 그대로 다리를 걸어 태현을 넘어뜨리며 주먹을 세차게 내뻗어 태현의 명치를 강타한 것이다.

"?...!"

태현은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것을 느끼며 이를 악물었다. 그런데 그렇게 고통을 참아내고 있는 태현에게 현석의 외침이 들려왔다.

"형님! 길수와 우철이가!!"

태현은 현석의 외침에 흠칫 떨리는 눈으로 길수와 우철이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길수와 우철은 몇 사람의 남자들에 의해 어디론가로 끌려가고 있었다.

퍼억!!

그 틈을 강재가 놓칠 리 없었다. 강재의 발길질에 태현의 허리가 기형적으로 꺾어졌다.

"헉, 허억...!"

태현은 순간 갈비뼈가 나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틈도 없이 다시 강재의 주먹이 날아온다. 그때, 강재의 위로 거대한 그림자가 드리웠다.

"이런 개호로새끼가!!"

현석이었다. 현석은 주먹을 날리는 강재의 뒷덜미를 움켜쥐며 뒤로 확 잡아당겼다. 현석의 무지막지한 힘에 강재는 2미터나 뒤로 날아가버렸다.

"형님! 저 녀석은 제가 처리하겠습니다!"

태현은 현석에게 고개를 끄덕여주곤 끊어지는 것만 같은 허리를 부여잡으며 길수와 우철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멈춰 새꺄!"

태현은 자신의 앞을 막아서는 노랑머리 양아치의 각목질을 무릎을 굽혀 피함과 동시에 녀석의 목을 꽉 움켜쥐고 뒤로 잡아당겨밀어 뒤에서 쇠파이프를 날려오는 녀석의 공격에 방패로 사용했다.

까앙~!

역전 만루홈런의 시원스런 타격음이 울려퍼지며 노랑머리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태현은 계속해서 멈추지 않고 길수와 우철을 향해 달려간다.

"길수야! 우철아!"

두 아우를 향해 달려가는 태현은 모습은 마치 쓰레기 더미를 밀어버리는 불도저 같았다. 길수와 우철까지 앞으로 20여 미터. 태현이 지나간 길 뒤로는 십수 명의 남자들이 뒹굴고 있었다. 한편 강재를 상대하는 현석은 상당한 고전을 하고 있었다.

퍼억!!

"큭...!"

복부를 부여잡으며 뒤로 몇걸음 물러서는 현석. 지금 저 자식이 칼로 쑤시고 있는 게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강재는 곧바로 현석의 허벅지 옆부분을 구두 앞발로 찍어 찼다.

푹!

다시 한 번 칼이 쑤셔지고, 현석은 그 고통을 이를 악물며 참아내었다. 현석은 태현과 같은 스피드는 가지고 있지 못했다. 그러나 태현마저 넘어서는 맷집을 가지고 있었다. 보통 허벅지 옆을 제대로 맞으면 일시적으로 다리가 마비되며 쓰러지게 된다. 많은 경험으로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이 오히려 강재에게 독이 되었다. 강재는 현석과 같은 맷집을 가진 상대를 만나보지 못한 것이다.

꽉, 쿠웅!

강재의 머리를 두 손아귀 안에 완전히 감싸버린 현석은 그대로 필살기인 머리박치기를 강재에게 먹여주었다. 두개골이 갈라지는 것만 같은 소리가 울려나고, 강재의 다리는 일순간 풀려버린다. 현석은 허물어지는 강재 때문에 팔에서 느껴지는 묵직한 무게감에 이를 드러내며 다시 한 번 강재의 이마로 머리를 날려갔다. 그러나 그때, 믿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강재는 아예 모든 체중을 현석에게 내맡겨버린 채 현석의 두 손을 꽉 잡고 허리를 올려튕겨 다리를 위로 쭉뻗어 쇄도하는 현석의 턱에 카운터 킥을 먹여버린 것이다.

"허...헉...!"

턱이 부숴질 듯 흔들린 현석은 거구를 가누지 못하며 주춤 주춤 뒤로 물러섰다. 그때, 이제서야 강재에게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식파! 이 녀석을 맡는다!"

강재의 명령에 일단의 무리들이 싸우고 있던 상대를 내팽게 치고 현석에게로 달려들었다. 강재는 현석을 내버려두고 재빨리 태현을 뒤쫓아 갔다. 한편 그때, 길수와 우철을 끌고 가던 남자들의 의식을 빼앗아버린 태현은 걱정과 염려로 가득한 얼굴로 두 아우를 묶고 있는 줄을 풀어주고 있었다.

"길수야! 우철아! 정신 차려라...! 정신 좀 차려줘..."

약하게 움직이는 가슴만 아니면 죽었다고 생각이 들 만큼 몸에서 아무런 힘도 느껴지지 않으며 자신이 움직이는 대로 그저 흐느적거리는 두 아우. 태현은 가슴이 찢어지는 것만 같았다.

"미안하다...크흑...미안해......"

아우들을 향한 미안함과 근심으로 태현의 눈동자는 눈물로 얼룩져 있었다. 그런 태현에게, 강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을 건드리지 마라."
"......!"

태현의 손길이 움찔 멈췄다. 서서히 강재쪽으로 돌아서는 태현. 강재가 무표정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그 두 녀석은 오야붕께로 보낼 선물이다."

태현의 눈동자는 급격히 눈물을 지워냈고,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사나워졌다.

"왜 굳이 길수와 우철이냐. 왜 이 녀석들을 건드린 것이지?"
"나는 기억하고 있지 못하지만, 너는 기억하고 있겠지."

의문을 담은 눈빛을 강재에게로 향하며 태현은 눈살을 찌푸렸다.

"무슨 말이냐."
"9년 전. 오야붕을 네 녀석에게로 끌고간 건 저 두 녀석이었다. 그 때문에 오야붕께서는 네 녀석에게 왼쪽 눈을 잃으셨지."
"......"

태현의 이가 잇몸을 헐려버릴 듯이 악 물어졌다. 태현의 눈에는 진득한 살기가 피어오른다.

"오야붕? 야마구치 타사부로를 말하는 것인가."
"......"

강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현은 화가 머리 끝까지 난 얼굴로 강재에게 다그쳤다.

"네 녀석이 모신다는 놈은 김형필 아니냐?!"
"그렇다. 난 형필 형님을 섬긴다."
"......!"

태현은 주먹을 부르르 떨었다.

"이제 알겠군. 오야붕이라고? 다른 조직의 보스를 오야붕이라고 부르진 않겠지. 그러니까, 김형필은 지금 야마구치 타사부로의 밑에 있단 말이냐?"
"지금?"

강재는 조소를 지었다.

"마음대로 생각해라."
"후우-우......"

태현은 두 눈을 감으며 숨을 깊이 내쉬었다. 서서히 뜨이는 태현의 눈동자. 강재의 앞에 드러난 태현의 눈동자는 이글거리는 살기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만약 여기서 살아서 나간다면, 만약 살아서 야마구치 타사부로를 만날 수 있게 된다면. 전해라. 그때 네놈에게 죽임당했던 내 아우의 빚을 아직 다 받지 못했다고. 다음 번엔 네놈의 오른쪽 눈과 양쪽 귀라고 말이야."
"......"

강재는 대답하지 않았다. 태현도 강재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았다. 그리고, 드디어 강재는 태현의 진정한 주먹을 상대하게 되었다. 분노한 태현의 주먹은 그 이전과는 차원이 다르다.





"허..허억!! 제..제발 살려.."

퍼억!!

현석은 두려운 눈빛으로 애걸하던 대식파 조직원 중 마지막으로 남은 녀석의 머리통을 가차 없이 날려버렸다.

"뭐야. 벌써 청소 끝난 거야?"

현석이 눈을 희번뜩 치뜨며 주위를 둘러보자 그의 시선을 받은 상대편 조직원들은 기겁을 하며 두려움에 몸을 떨었다. 1 대 수십. 현석이 그 스코어를 1 대 0으로 바꾸어버리는 데는 불과 몇 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현석의 무력은 압도적인 것이었고, 지금 그의 주위로는 그 누구도 얼씬하려들지 않고 있었다.
과거의 태현파 조직원들과 강재가 이끌고 온 남자들의 싸움이 시작된지도 어언 20여 분이 흘러가고 있었다. 싸움의 양상은 강재의 부하들의 압도적 유리에서 현석과 17명의 과거 태현파 행동대장들의 활약으로 서서히 태현파쪽으로 기울어지고 있었다. 썩어도 준치라고, 다들 30후반이 넘은데다 손을 씻은지 8년이 지났음에도 왕년의 실력은 어디 가지들 않았던 것이다.
한편 잔혹한 광경이 펼쳐진 제3부두의 어느 컨테이너 뒷편, 한 명의 중년 남자가 떨리는 눈빛으로 싸움의 정황을 바라보고 있었다. 고윤수. 태현의 의형이자 갈매기파의 보스. 그리고 길수와 우철을 함정에 빠트리는데 협력한 인물 중 하나인 남자였다.

"이 새꺄! 일로 안 와?!!"

현석의 고함소리가 멀리 떨어져 있는 윤수에게로까지 들려왔다. 윤수는 그 고함소리가 마치 자신에게로 향한 것이기라도 한 듯 몸을 움찔 떨었다. 윤수의 눈에 비춰진 현석은 강재의 부하들을 무식한 힘으로 쓸어버리고 있었다. 그의 주먹질에 수도 없이 많은 남자들이 허수아비처럼 쓰러져간다. 윤수가 시선을 돌리자, 이번엔 명일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 일명 쓰리박이라 불리는 3형제 중 맏이. 그는 정확한 급소 가격으로 깔끔하게 상대를 처리하고 있었다. 윤수는 고개를 푸욱 수그렸다.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는 윤수. 태현 아우와 함께 했던 시절은 정말로 즐거웠었다. 이제는 적이 된 저들과도 정말로 돈독한 우애를 나누었다.

"적......"

어째서 적이 되어버린 것일까. 윤수는 괴로운 얼굴로 이마를 차가운 컨테이너 벽에 쿵, 쿵, 박았다. 적이 된 이유는 간단했다. 바로 자신 때문이다. 한국 건달계 전체를 집어삼키려는 김형필의 야욕에 더 이상 버티지 못해 그에게 무릎을 꿇었으니까. 물론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핑계를 댈 수도 있었다. 형필파와 손잡은 대식파는 너무나도 손쉽게 부산에 나와바리를 넓혀갔고, 자신은 그에 점점 떠밀려 원래 자신의 텃밭이었던 해운대만 근근이 지키던 실정이었으니까. 이 세계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하...하하..하......"

나지막이 웃음소리를 흘리는 윤수.

"어쩔 수 없었다고...?"

윤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리 김형필이 커졌다 하더라도 길수와 우철만큼은 끝까지 버텨내었다. 그러니까 어쩔 수 없었다는 핑계는 댈 수 없었다. 길수와 우철이 태현 아우에게 아낌을 받은 만큼, 아니 그 이상으로 자신은 태현 아우에게 존중을 받았으니까. 정말로 별볼일 없던 자신을 태현 아우는 그렇게나 극진히 대우해주었으니까.
벌써 20년은 지난 일이었다. 윤수는 태현이 명태파를 들어엎을 때 약간의 도움을 주었다. 윤수는 그 무렵 아직 풋내기 꼬붕이었던 태현의 가능성을 제법 이름을 날리기 시작한 그의 주먹 실력을 통해 어느 정도 평가하고 있었고, 자신의 나와바리를 서울로 확장시키는데 도움이 될 세력이 필요했었다. 그때 때마침 태현과 연이 맞닿게 되었고, 명태파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려 하는 태현에게 부하 몇 명을 빌려주었던 것이다. 정말로 보잘 것 없는 도움이었다. 실제로 윤수의 도움은 그리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태현은 윤수의 그 도움을 은혜로 생각하고 그 뒤로도 주욱 윤수를 극진히 대해준 것이다.

"태현 아우에게 은혜를 입은 것은 오히려 나다..."

윤수는 괴로운 얼굴로 어지럽게 뒤엉켜 있는 무리를 바라보았다.

"그런데...그랬는데......어째서 나는......"

"크흑..."

...이런 식으로 그를 배신한 것일까. 윤수는 자신의 선택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 차라리 태현 아우가 은퇴했을 때 자신도 손을 씻었더라면 좋았을 뻔했다. 하지만 자신은 십여 년간 누렸던 부귀영화를 포기하지 못했었고, 결국에는 여기까지 왔다.

"흐으...크흑..."

소리 죽여 눈물을 흘리는 윤수. 솔직히 정말로 버티기 힘들었다. 그러니까, 태현 아우가 조금만...조금만 더 빨리. 어차피 저렇게 나타날 것, 조금만 더 빨리 돌아와주었더라면......

"......!"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하며 싸움판을 쳐다보는 윤수의 눈에 자신과는 반대편 쪽의, 현석의 저 뒤쪽에서 사시미칼을 꺼내드는 마스크를 쓴 한 남자가 보여왔다. 윤수는 설마하는 얼굴로 서서히 앞으로 걸어나갔다. 윤수의 발걸음과 거의 동시에, 마스크를 쓴 남자가 사시미를 두 손으로 꽉 잡고 현석에게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서..설마...!"

그것을 본 순간, 윤수는 아무 것도 생각할 수 없었다. 현석 아우는 이쪽을 보고 있어서 마스크 남자의 존재를 눈치 채지 못하고 있다. 윤수는 미친 듯이 현석을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 현석과 윤수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좁혀질수록 마스크 남자와 현석의 거리도 급격히 줄어든다.

"윤수...형님?"

자신을 향해 다급한 얼굴로 달려오는 윤수의 존재를 현석이 깨달았다. 현석은 처음엔 반가운 얼굴이었다가 곧 어째서 그가 이런 곳에 있는지 의아한 표정을 지었고, 이어서는 윤수가 왜 저리 급박한 표정을 짓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만들었다. 그런 현석을 향해 윤수가 기를 쓰고 외쳤다.

"현석 아우! 피하게!!"
"예?"

어리둥절한 얼굴로 좌우를 둘러보는 현석. 윤수에게로 신경이 집중되어 있는 현석은 자신을 향하는 칼날을 눈치 챌 여유가 없었다. 이제 윤수와 현석의 거리는 불과 3여 미터. 마스크 남자의 거리도 마찬가지다.

"비켜서란 말이야...!!"

외마디 고함소릴 내지르는 윤수. 현석은 당황한 얼굴로 다시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아주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

푸욱...!!

"어, 어?"

윤수는 있는 힘껏 현석을 옆으로 밀쳤고, 몇 걸음 옆으로 밀려난 현석은 놀란 얼굴로 윤수를 쳐다보았다. 이상했다. 왜 윤수 형님이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것이지?

"이, 이런 씨발!!"

현석은 너무나 놀랐기에, 윤수의 앞에 서 있는 남자가 욕지꺼리를 내뱉으며 도망을 친 후에야 윤수의 가슴에 박혀있는 사시미를 볼 수 있었다.

"......!"

급격히 커지는 현석의 눈동자. 서서히 윤수가 허물어진다.

"혀, ...윤수 형님!"

현석은 소스라칠 듯이 놀란 얼굴로 급히 윤수를 부여잡았다.

"크..으..윽...현석...아우, 윽...!"

윤수의 하얀 와이셔츠에 붉은 핏물이 서서히 번져나가기 시작했다.





"겨우 이 정도였나? 난 너를 좀 더 높이 평가했다. 내 생각을 틀린 것으로 만들지 마라."

쉬싯, 퍼억!

"커헉!"

다시 강재의 머리가 돌아간다. 털썩, 거친 땅바닥에 널부러지는 강재. 제것이 아닌마냥 감각이 느껴지지 않는 목을 힘겹게 돌려 태현을 올려다보는 강재의 눈동자에는 두려움이 서려있었다. 강재는 자신이 지금 귀신과 싸우고 있다고 생각했다.

"일어나라."

태현이 말했다. 강재는 마치 그 음성에 이끌리듯 흐느적, 흐느적 몸을 일으켰다. 태현은 가만히 강재를 응시하고 있었고, 강재는 마치 죽은 자의 그것을 바라보는 듯한 태현의 눈빛에 몸서리를 쳤다.

"흐아악!!"

전신을 에워싸는 죽음의 느낌에 몸부림 치듯 태현을 향해 주먹을 내뻗는 강재. 수백만 번을 휘둘렀던 주먹은 몸에 완전히 녹아있었고, 두려움을 거부하는 발악은 아직도 여전히 강재의 주먹에 스피드를 실어주었다. 아까 전 태현을 고통스럽게 만들었던 것과 똑같은 주먹이었다. 그러나,

스스슷...

인영을 그리며 강재의 주먹을 스쳐지나친 태현은 어느새 강재의 뒷편에 서 있었다.

꽈악...

태현은 강재의 머리채를 휘어잡고 자신에게로 잡아당겼다.

"커흑!"

강재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다는 것까지 완벽히 알고 있는 태현의 손길은 너무나도 쉽게 강재가 태현에게로 끌려가게 만들었다. 태현은 강재의 귓가에 대고 스산한 음성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널 살려주기로 결정했다."

퍽!

주먹의 너클파트로 강재의 인중을 약간 비켜난 곳을 찍어버리는 태현. 의도적으로 태현이 급소를 피해서 쳤기에 강재는 간신히 의식을 잃지 않을 수 있었다. 대신, 강재의 입가로 흘러내리는 핏물에는 이빨 두 개가 섞여 있었다.

"가서. 네가 무엇을 보았는지 말해라."

딱딱딱딱...

지금은 여름이고, 비록 비가 내리나 춥지 않은 날씨였다. 그럼에도 강재는 이빨을 딱딱 부딪히고 있었다.

"여기서 멈추지 않으면, 무엇을 보게 될지를 말해라."

또다시 들려오는 그의 음성. 강재는 전신을 부들부들 떨었다. 두려웠다. 이곳에 오기 전 들었던 말이 떠오른다.

"......잘 들어라. 무슨 일이 있어도 정태현을 화나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강재는 형필이 했던 말의 의미를 뼈져리게 느끼고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 말을 하고 있는 것은 인간이 아니다. 사신(死神). 강재는 이 남자가 왜 그리 불리는지 알 수 있었다. 그리고, 또다시 강재의 뒷덜미를 곤두서게 만드는 음성이 흘러나온다.

"길수의 몫은 너에게 받겠다."

짧게 끝난 목소리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고통은 차라리 의식을 잃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었다.

우둑, 빠각, 빠드득...!!

뼈가 나가고, 부러지며, 으스러지는 소리가 흘러나온다. 그러나 그 소리는 강재가 내지른 비명에 삽시간에 묻혀버렸다.

"크아..아아악......!!"

누구가 들어도 소름이 끼치는 고통에 찬 비명이었다. 부두의 컨테이너는 벽을 만들고 있었고, 강재의 비명은 메아리를 만들며 모든 이의 움직임을 정지시킨다. 소란스럽던 부두가 순식간에 잠잠해졌다. 이곳의 모든 눈동자가 태현과 강재를 향했다.

"아직 발목이 남았다."

싸늘한 목소리. 어디를 향하는 것인지, 마치 한시라도 빨리 이곳에서 벗어나고픈 간절함이 묻어나는 몸짓으로 앞으로 기어가던 강재의 움직임이 움찔 멈추었다. 어깨가 탈골되고 팔꿈치가 기형적으로 꺾여 팔이 너덜거리며, 옆구리에는 마치 조그만 혹이 난 것처럼 뒤틀린 갈비뼈가 살을 찌르고 있다. 그러나 강재의 이런 비참한 몰골을 응시하는 태현의 눈동자에는 티끌만큼의 동정심도 묻어있지 않았다. 동공이 떨어져 나갈듯이 덜덜 떨리는 눈동자로 서서히 태현을 돌아보는 강재. 태현의 발이 서서히 들렸다.

콰직!!

"흐아아아---악......!!"

외마디 비명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강재는 그대로 혼절해버렸다. 태현은 비뚤어진 강재의 발목에서 시선을 돌리며 씹어뱉듯 말했다.

"우철이의 몫은 김형필에게 빚으로 남겨두겠다."

태현은 그 말을 끝으로 발걸음을 두 아우를 향해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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